* '홍진호 팬'이 '홍진호'에게 바치는 헌사. 라는 글을 읽지 않으셨다면, 이 글부터 읽어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http://yusongi.tistory.com/343

* 아직 감정이 다 정리되지 않아, 매우 횡설수설합니다.

 

 

 

 

 

  언제부턴가 너와 나는 말도 안 되는 최면에 걸렸다.

 

  아주 오래 전, 어떤 이들은 네가 가진 우승 기록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것을 부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래서 너의 역사를 왜곡했다. 그들에게 너는 우승 없는 저그여야 했고 그래서 그들은 너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최면을 걸었다. "홍진호는 우승하지 못했다." 하고. 많은 이들은 그 최면에 의문을 품었고 나는 그 최면을 완강히 거부했다. 너는 성격상, 그리고 입장상 그것을 드러나게 거부하지는 못했으나 너 역시 그 최면을 탐탁찮아했다.

  그러나 최면은 계속 이어졌고 점차 많은 이들이 그 최면에 빠져들었다. 너 역시 언제부턴가 그 최면에 걸려버렸고, 나는 마지막까지 발악했으나 힘이 없었다.

 

  네가 이룬 업적들은 모두 '서자' 취급을 받으며 우스갯거리로 전락했다. 나는 칭찬받아 마땅한 너의 역사가 농락당하는 걸 보고도 어찌할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꾸준히 너의 역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역사와 너를 '준우승의 한' 이라던가 '이벤트전의 제왕'이라던가 하며 비웃었지만, 나는 안다. 너에게는 자랑스러운 우승의 역사가 있었고 네가 이룬 준우승의 업적은 '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빛났다는걸.

 

  네가 이번에 이룬 열세번째의 우승, 그 자랑스러운 업적도 사람들에게 우스갯거리로 치부되는 너의 역사에 편입되어 모욕당하겠지만, 나는 너의 우승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너도 그렇지 않을까.

 

 

 

  너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스타판의 불운아였다. 사실, 너의 불운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으니 너는 불운아라기 보다는 차라리 희생양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옳을지도 모른다. 팬들이 그토록 성토했던, 너에게 의도된 불리함을 너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너의 아쉬웠던 순간들에 대해 얘기하던 너 역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너를 뜯어먹고 너를 쥐어짜 마시며 몸집을 키운 스타판이 끝날 때 까지도 너는 명예회복 하지 못한 채 훼손된 반쪽짜리 역사로 헌액되었다. 그래서 나는 서운했고, 너의 업적을 부정한 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자신들이 좋을대로 너를 이용하기만 했기 때문에 그들이 미웠다.

 

  한번씩 궁금할 때가 있었다. 너는 서운하지 않았는지. 스타판의 흥행을 위해 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희생되고, 훼손되고, 모욕당한 너는 정말 괜찮은지.

 

  네가 스타판을 떠났을 때, 나는 매우 서운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스타판에서 그 어떤 프로게이머보다 많은 수모와 치욕을 당하면서도 스타판을 위해 노력했고 견디기 힘든 모욕과 수난을 참으며 스타판에서 버텨줬다. 십년 넘는 세월이면 너도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해 준 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너 역시 편히 살아야 할 때라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서운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은, 내가 욕하는 그 어떤 이들처럼 나도 너에게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버텨줬는데, 조금 더 버텨주면 안돼?" 하고, 나는 당연히 너의 인내와 너의 희생을 기대했으며 그것이 단순한 나의 욕심인 것을 알면서도 너에게 강요하고 싶었다. 네가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나같은 팬의 그 욕심 때문에 험한 그 바닥에서, 험한 일을 감내하며 그 곳에서 그때껏 버텨줬다는 걸 알면서도.

 

 

 

  방송일로 바쁜 너를 보면서 나는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너의 이십대를 통째로 바친 스타판에서 네가 더 잘 나갔어야 했는데, 네가 더 큰 사랑을 받고 더 위대한 기록으로 남았어야 했는데, 네가 일군 역사들이 모욕당하는 일은 없었어야 했는데, 네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고 너에게 쏟아지는 오물들을 막아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네가 푸대접 받고 너를 훼손했던 스타판이었지만, 내가 가장 사랑했던 너는 프로게이머 홍진호였고 스타판의 홍진호였고 이스포츠의 홍진호였기 때문이라서 그런걸까. 이스포츠판과 네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럼에도 이스포츠판과 나는 너에게 서운하단 소리를 할 자격이 없어서 더 씁쓸했다.

 

  스타 파이널 포 기획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기획의 주체가 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나를 질책했다. 네가 어떤 사람인데. 대놓고 저그 우승 막으려고 테란맵 토스맵 깔아대던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한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던 너인데. 마지막까지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존심, 이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너인데. 그런 너인데, 너는 계속해서 너의 본심을 증명했는데 나는 번번히 너를 걱정하고 의심하기만 했었다. 그래서일까, 너는 또다시 증명했다. 그리고 또다시 약속을 지켰다. 은퇴할 때 했었던, "이 스포츠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약속을.

 

  이제 막 방송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싶은 일도 많을텐데. 바쁘고 힘들텐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선수로 참가하는 것 뿐만 아니라(물론 선수로 곰클에 참가해 준다는 말만 들었을 때에도 고맙고 기뻤지만) 리그를 기획할 생각을 해 줬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너의 고향, 너의 뿌리, 너의 어머니이자 너의 아이인 스타리그. 사실 고향 떠나 성공하면 타향에 그대로 눌러앉아 새 삶 사는 경우도 많은데,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그리고 돌아와줘서 그리고 "내가 그래도 좀 여유로우니, 뭐 도울 것 없을까?" 하고 마음써줘서 고마웠다.

  사실, 새로 생긴 너의 팬들은 너의 오랜 팬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고 또 너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있는 듯 보여서, 네가 힘들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나같은 팬은 이제 너에게 별 쓸모 없는 팬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너의 오랜 팬들, 네가 게임하는 모습을 가장 사랑하던 그들을 위해 다시 헤드셋을 끼고, 키보드를 잡고, 마우스를 잡아줘서 고마웠다.

  네가 이렇게 마음쓰지 않아도 너는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네가 스타판을 돌아보지 않는대도 누구도 널 원망할 수 없는데도.

 

 

 

  너는 여전히 너라서 고맙다. 여전한 네 게임 스타일도 고맙고, 전성기 만큼은 당연히 아니지만 여전히 선수시절 실력을 가지고 있어줘서 고맙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져줘서 고맙고, 팬들을 사랑해줘서 고맙고, 이스포츠를 떠나지 않아줘서 고맙다.

  여전히 우승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끔은 네 경기를 볼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해줘서 고맙다.

  여전히,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너라서 고맙다.

 

 

  몬스터짐 스타 파이널 포 우승자 홍진호.

  열세번째 우승을 축하하며, 사랑한다.

 

 

 

 

 

* 역시 감정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글 쓰기가 무리인듯 하여, 짧게 글을 마칩니다. 아마 곰클이 끝나도 비슷한 글을 쓰게 될 것 같으니, 그 때 제대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 홍진호 팬사이트 '더 옐로우'에 놀러오세요! : http://jino.dotho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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