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포함한 블로그 내 모든 글의 불펌이나 무단 도용·인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yusongi.tistory.com/notice/407를 참고해 주세요.

 (모바일에서는 http://yusongi.tistory.com/m/407로 접속해 주세요.) 




-전지적 홍빠 시점에서 본 홍진호 명경기 시리즈-

 

1. '프로게이머 홍진호'의 명경기를 100% 필자 본인의 주관을 기준으로 선정해 소개합니다. 연도별로 나누어 시리즈 연재할 계획이며, 한 해 기준으로 TOP5 정도만 꼽을 예정이었으나 2001년 명경기 리스트를 적어보니 탑텐이 넘어가는 관계로다가.... 3~5경기를 1회분으로 묶어 분할합니다.
2. 한 해에 소개할 명경기가 10개도 넘어간다는 대목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제목은 '명경기'라고 적어놓고, 사실은, 그냥 필자가 재밌게 봤던 경기들 모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3. 그래도 명색이 명경기 모음이니 별점은 매깁니다. 별점은 ★★★★★ 만점이고, 당년도 경기들의 평균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즉, 2011년도 만점과 2001년도 만점의 경기력이 같단 소리가 아닙니다. 또한 별점 역시 100% 필자 본인의 주관에 의거합니다.

4. iTV나 게임큐 등 군소 방송사 경기는 영상을 찾기 힘들어서, 양대 방송사 기준으로 선정합니다.

5. 이하의 모든 내용은 홍진호 팬의 입장에서 작성되었으므로 홍진호에게 편향된 시선이 필연적이나, 경기 외적인 내용, 특히나 스타판과 관련된 내용은 가능한 한 객관성을 견지하려 노력할 것임을 밝힙니다.

6. 포스팅 편의를 위해 이하 반말로 작성합니다.

 

 

 

 

 

폭풍의 시작, 2001년

제 2의 최진우가 아닌 제 1의 홍진호라고 불리고 싶었던 선수,

저그 시대가 저물고 테란 시대의 서막이 오른 곳에 폭풍을 일으키다.

 

 홍진호의 공식적인 데뷔연도는 2000년이다. 후에 스타판 역사가 재편되면서 모든 공식의 기준이 양대 방송사, 그 중에서도 온게임넷, 또 그 중에서도 온게임넷의 '스타리그'라는 브랜드를 단 자칭 공식대회에 편중되는 바람에 이외의 기록은 모두 서자 취급을 받았으며 그 영향인지 홍진호의 공식 데뷔가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에 진출한 2001년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홍진호의 공식적인 데뷔는 2000년 쉐르파배이고 이러한 사실은 한빛소프트배에서 엄재경 또한 언급한 바가 있다.(지금 생각해보면, 쉐르파배도 스타리그는 아니지만 온게임넷에서 방영해 줬기 때문에 그나마 언급된 것이라고 본다. 아니었다면 얄짤 없었을걸.)

 쉐르파배는 내가 제대로 보지 않아 자세히 언급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처음 진출한 방송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홍진호는 실력있는 신예 저그로 이름을 알렸고,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코카콜라배 스타리그에서 준우승하면서 1.07버전까지의 수혜를 받은 저그들을 제치고 최고의 저그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이른바 스타판 0세대, 혹은 1세대로 불리는 저그들의 종말을 고하고 1세대, 혹은 1.5세대 저그 시대의 서막을 열었음을 의미했다. 또한 이전까지의 저그 강세 시대가 저물고 스타판이 끝날 때 까지 이어졌던 테란 최강의 시대가 시작되는 그 대서사의 첫머리에 저그의 수장으로 홍진호가 있었다는 것, 그것은 이후 홍진호가 이른바 '스타판에서 저그가 가진 숙명'을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홍진호는 2001년, 저그의 몰락이 시작되고 테란의 부흥이 시작되는 전쟁터에서 폭풍의 시대를 열고 저그의 '진정한 시작'을 알렸다. 저그가 스타판 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의 이전 저그들과 달리, 새롭게 시작된 저그의 잔혹한 숙명 앞에 홀로 맞서 싸우기 시작한 저그, 그가 바로 홍진호였다.

 

 

 

 

 

 

 

경기일 : 01. 02. 16.

경기대회 : 2001 Hanbitsoft 스타리그 - 16강 C조 1경기

경기상대 : 유병준(유대현으로 개명) - 테란

     대저그전 전적 [통산전적 31승 50패(승률 38.3%), 2001년 전적 5승 9패(승률 35.7%),

   한빛소프트배 전적 1승 2패(승률33.3%, 예선 대저그전 전적 없음)]

     홍진호:유병준 [통산전적 3:0, 공식전 전적 1:0, 홍진호 승률 100%]

경기맵 : Hall of Valhalla

별점 : ★★★★☆

 

 우선, 맵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빛스타리그는 1.07버전으로 진행되었고, 1.07버전은 저그가 상대적으로 조금 괜찮은 버전이었다. 테란>저그라는 종족간의 상성 설정이 뒤집힐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저그=테란 수준에 가까웠었던 것은 맞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테란이 리그에서 어려움을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테란을 배려해 제작된 맵이 홀 오브 발할라로, 온게임넷의 첫 게임맵 공모 당선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려가 지나쳐 도를 넘어선 테란맵을 만들어 놓았으니, 저그빠로서는 이가 갈리고도 남았다.

 홀 오브 발할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2부에서 더 자세히 하도록 하고, 일단 여기서는 테저전 전적만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한빛소프트배에 사용되었던 홀 오브 발할라(오리지널 버전)는 저테전 총 29전 중 테란 21승, 저그 8승으로 72.4:27.5의 압도적 테란 우세를 보이는 맵이다. 그나마도 홍진호의 전적을 제외하면 테란 20승, 저그 6승으로 76.9:23의 답없는 밸런스를 자랑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하겠지만, 동시대의 라그나로크가 너무 압도적인 개테란맵of개테란맵이라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일 뿐, 사실상 홀 오브 발할라 또한 개테란맵이었음은 분명하다.

 유병준은 1.08버전 이전에 주로 활동했으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므로, 유병준의 전적이나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금 불공평 할 것 같아 생략하고, 아래에서 경기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한빛소프트배는 유병준의 마지막 불꽃을 구가한 리그였다.

 

 다시 경기 얘기로 돌아와서, 이 경기는 홍진호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데뷔 경기이자(홍진호의 공식 데뷔 경기가 아니다. 홍진호의 공식 데뷔 경기는 쉐르파배 16강 VS나건동, 홍진호의 비공식 포함 데뷔전은 iTV 고수를 이겨라 VS강도경이다.)홍진호가 '폭풍'으로 게임팬들에게 인식된 경기다. 내가 진호의 팬이 된 계기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공격으로 테란을 괴롭힌 이 경기는 당시 게임팬들 뿐만 아니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꽤나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장의 중요성과 물량으로 대변되던 당시 저그의 트렌드에 일갈하듯, 저그의 기본정신은 공격이다! 라는걸 일깨워주는듯 했던 경기. 계속되는 드랍으로 지독하게 유병준을 괴롭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기 초반의 드랍은 유병준이 무난하게 막아냈지만, 바로 이어진 럴커 드랍에 SCV 대박이 터지면서부터 홍진호가 경기 주도권을 내내 잡은채로 게임을 이끌었다. 마린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드랍하기 위해 럴커를 아래에 심어둔 채 먼저 히드라를 드랍하고, 다시 럴커를 올리는 센스는 지금이야 흔한 컨트롤이지만 당시로서는 분명 센스있는 플레이였다. 가난한 상태에서 파상공세를 펼치던 홍진호의 드랍작전은 탱크와 베슬이 나오면서 무난하게 막히나 싶었지만 2교대 드랍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테란의 본진을 충분히 흔들었고, 중간에 드랍 위치 선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삽질을 좀 했으나 유병준의 멀티를 한번 깬 이후로는 테란 앞마당을 막으며 저그가 확장할 시간을 충분히 벌었다. 그렇다고 틀어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본진에 드랍을 하면서 견제도 꾸준히 해줬고. 저그 멀티를 견제하기 위해 육지로 내려온 테란 한방 병력을 상대하면서 테란이 자원 수급할 시간을 주기 보다는, 자신의 멀티 하나를 내어주고 테란의 유일한 자원지역인 앞마당을 털면서 자원줄을 끊는 판단이 좋았다. 테란의 자원 수급을 끊은 이후 저그의 멀티 견제를 왔던 주병력을 줄여주고, 또다시 테란이 저그의 멀티를 노리는 동안 홍진호는 테란의 앞마당을 끊은 뒤 바로 테란의 남은 주병력을 싸먹으면서 승기를 확실히 잡았다. 이후 한참동안 유병준은 열심히 버티지만 결국 홍진호의 마지막 드랍에 GG.

 드랍으로 시작해 드랍으로 끝난, 홍진호의 상징인 폭풍드랍의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 준 경기(당시 기준)였다.

 

 당시 유병준은 우주방어로 유명한 테란이었고(반대되는 게이머는 현 게임해설가 김동준. 김동준은 우주공격 테란이었다.) 이 경기에서도 유병준의 수비력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계속되는 공격으로 집요하게 빈틈을 만들고, 그 빈틈을 파고드는 홍진호가 좀 더 잘해서 이겼을 뿐. 어떻게든 상대의 빈틈을 파고든다, 혹 상대가 빈틈이 없다면 공격으로 빈틈을 만든다-라는 홍진호의 경기 성향을 잘 보여준 경기.

 돈도 없고 병력도 없는데 끝까지 버티는 유병준이나 끝까지 공격하는 홍진호나 둘 다 악착같이 경기해서 더 재밌었다. 후에 성춘쇼에서도 밝혔듯, 유병준이 정말 열심히 버텼다. 그래서 더 명경기 그림이 나오긴 했지만.

 2001년 난전형 양상의 저테전으로는 손에 꼽히는 경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공방양민보다 못한 경기력인데, 당시에는 정말 굉장한 수준의 경기였다. 뭐, 홍빠 보정빨인지 지금 봐도 나는 꽤 재밌다.

 

 여담으로, 나는 여전히 유대현 보다는 유병준이 입에 붙는다. 습관이 되어서 맨날 유병준이라고 한다...ㅠ_ㅠ;;

 


 

 

 

 

 

경기일 : 01. 06. 22.

경기대회 : 2001 코카콜라 스타리그 - 16강 B조 2경기

경기상대 : 김정민 - 테란

     대저그전 전적 [통산전적 167승 121패(승률58%), 2001년 전적 50승 22패(승률69.4%),

   코카콜라배 전적 6승 3패(승률66.7%, 예선전적 포함)]

     홍진호:김정민 [통산전적 23:13(홍진호 승률 63.9%), 공식전 전적 11:4(홍진호 승률 73.3%)]

경기맵 : Ragnarok

별점 : ★★★★★

 

 스타판 사상 최악의 테란맵 라그나로크. 그냥 테란맵도 아니다. 개테란맵, 씹테란맵, 그보다 더 최악의 수식을 해도 모자라는 극악의 테란맵. 스타판 후반기에 쓰였다면(지금은 없어졌으니 지금 쓰인다면...으로 가정하기가 좀 그렇다.) 전성기 이제동도 2군 테란에게 떡실신 당했을 거지같은 테란맵. 스타판 사상 최악의 밸런스 붕괴맵 TOP5에 들거라 확신한다. 당시 인터넷이나 배틀넷에서, 테란이 라그나로크에서 저그랑 싸워 진다면 스타 접어야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또, 영상에서 김캐리가 설명하듯, 당시에 이 맵을 두고 선수들조차 여기서 테란을 이기는 저그가 바로 킹왕짱!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개테란맵이었다. 최종 전적은 T:Z+P=14:1.(당시 이 맵에서 피봤던 저그들을 살펴보자면 박태민, 성준모, 이근택, 이창훈, 장진남, 김신덕으로 지금에서야 박태민과 장진남을 제외하면 듣보잡 취급을 받겠지만 성준모나 김신덕은 당시에 나름 잘 나가는 저그였고, 이창훈도 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팀플에서는 꽤나 쓸만했던 선수였다. 또, 당시 토스의 희망과도 같았던 임성춘이 라그나로크에서 임요환과 경기하는걸 보면서 피눈물 흘린 토스빠들도 많았다.) 타 종족으로 대테란전에서 유일하게 1승을 거둔 선수가 바로 홍진호고, 이게 바로 그 경기다. 이 사실 만으로 이 경기는 별점 만점을 받아도 모자라고, 2001년 대테란전 최고의 저그 경기라는 칭송을 받아도 모자라다.

 

 맵을 보면 알겠지만... 저그 유저 입장에서는 그저 눈물난다. 러시 거리가 가까워도 너무 가까워서(특히나 이 경기처럼 가로로 걸리거나 혹은 세로로 걸리면 답이 없는 수준으로 가깝다.) 테란이 벙커링 해대면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저그 앞마당에 시즈탱크 갖다 놓고 레이스로 언덕 위 시야 확보만 되면 저그 자원줄은 그냥 테ㅋ란ㅋ꺼ㅋ 당연히 앞마당 먹고 수비를 해야 사는데, 앞마당을 먹으면 가뜩이나 가까운 러시거리가 더 가까워져서 테란이 엎어지면 바로 코 닿는 데 해처리가 있다. 거기다가 앞마당이 지도 가로 끝쪽에 있다보니 본진 수비를 위해 3해처리가 거의 강제되는데, 그 세번째 해처리를 본진 입구 앞에다가 깔면 저그 해처리와 테란 본진이 이웃집 수준이다ㅋㅋㅋ 기가막혀서 눈물이 난다. 센터가 너무 좁아서 저그가 힘싸움 하기도 불리하고, 길목이 다 좁아서 테란이 조이면 저그는 답이 없다. 아니, 애초에 저그가 9풀을 강제당하는데, 거기에 3햇까지 강제당하니 이건 뭐 어쩌라고... 3햇을 지킬 자신이 없으면 본진 플레이로 버텨야 하는데, 그랬다간 그냥 말라죽는다. 그냥 맵 자체가 저그에게 답이 없는 맵. 반면 테란은 벙커링을 해도 되고, 중앙에서 힘싸움 해도 되고, 저그 조여놓고 확장을 해도 되고, 본진에 시즈탱크 몇대만 두면 앞마당까지 수비 가능하니 꾹 참았다가 한방러시 해도 되고... 테란이 뭘 해도 되는 더러운 맵. 이따위 맵을 엄옹은 저그도 할 만 하다, 테란도 어렵다 포장이나 하고있으니... 저그빠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 밖에.(물론, 엄옹은 애초에 라그나로크 사용을 반대했다고 알고있다. 그래도 일단 리그에 쓰이기로 결정했고 저그유저였던 엄옹이 봐도 답없는 테란맵인지라 어떻게든 포장은 해야 했겠지만.)

 

 맵도 개테란맵인데, 김정민이라는 선수는 또 어땠나. 지금 와서 평가하는 김정민이야 전성기가 빨리 끝난데다가 개인리그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서 갈수록 네임밸류가 떨어진 '스타판 초창기의 A급 테란'이지만, 당시만 해도 임요환에게 견줄 S급 테란이었고(임요환과 테란 진영에서 라이벌 구도였고 그래서 임빠들이 꽤 견제했었음.), 스스로는 다 망가졌다고 말했던 2005년까지도 프로리그에서 야무지게 제 몫을 하며 클라스를 입증했었으며, 후대에도 테란의 기초를 갈고 닦았다 평가받았을 만큼 정석테란이었다. 당시 손꼽히는 대저그전 강자기도 했고. 게다가 코카배 당시에 홍진호는 쉐르파배, 한빛배에서 이름을 알리고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저그의 신예 강자였지만 김정민은 이미 임요환과 테란의 왕좌를 놓고 다투는 네임드 선수였다. (스타판 역사가 십년도 넘긴 후에야 그냥 싸그리 통틀어 스타판 조상들이지, 당시에는 스타판 초창기였기에 고작 몇개월, 1년여 정도 먼저 이름을 알린게 굉장히 큰 차이였다.) 그런 김정민에게 라그나로크라는 씹테란맵에서 이겼다는 것은, 지금에 와서야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당시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엄청난 의의를 가지는 사건이었다.

 

 물론, 김정민이 라그나로크라는 희대의 테란맵을 믿고 초반에는 조금 안일하게 경기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저그 본진으로 진출하면서 입구 안 막은 것만 봐도... 하지만 그것만이 패인은 아니다. 참았다가 한방을 끌고 나오지 왜 자꾸 나와서 병력 소모를 하느냐고 김캐리가 계속 답답해 했지만, 김정민과 홍진호는 이미 친분이 있는 상태였고 이전에도 여러번 경기를 하거나 연습을 한 사이였다. 본진에 틀어박혀 수비만 하는 타입은 홍진호 스타일에 취약하다는 것 정도는 김정민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물론 공격형 테란도 거진 홍진호가 때려잡고 다녔다만...), 그것이 공격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홍진호는 김정민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고, 방어할 시간 조차 주지 않았다.

 

 초반부터 김정민은 다른 테란이 그러하듯 마린을 끌고 나와서 적당히 저그를 압박했지만 홍진호가 잘 막아냈고, 홍진호는 자신의 병력과 김정민의 병력을 초반부터 맞교환 하면서 가난한 상태에서 성큰까지 다수 건설한 약점을 어느정도 극복해냈다. 저글링과 러커가 테란 병력을 싸먹으려고 달려들자 김정민은 보다 좁은 지형으로 유인했지만, 끌려가지 않고 순간적으로 테란 본진으로 쳐들어간 홍진호의 센스가 결정적이었다. 부랴부랴 회군했을 땐 입구도 안 막은 테란 본진으로 저그 병력이 쳐들어간 뒤였고, 시즈도 안 해놓은 탱크 한기 정도는 저글링 밥이지 뭐... 테란 주병력을 싸먹고 난 뒤에는 망설임 없이 계속 테란 본진에 들이닥쳐 몰아붙이면서 저그가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테란을 조여놓은 상태였으니 한타이밍 정도 멀티를 생각해봄직도 한데, 최소한만 먹고 병력 꽉꽉 쥐어짜는 홍진호의 가난한 저그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준 경기가 되겠다.(이건 뭐 맵에 의한 반강제긴 하다만은...) 당시에, 앞마당만 먹은 저그가 계속 병력 뽑아 테란 괴롭히면서도 가스를 700이나 모으는걸 보면 참... 홍진호의 드론은 앞발에 모터라도 달았나... 아무튼, 중간에 히드라 7마리가 동시에 러커변태 하는 장면은 장관. 그 이후로는 완급조절 해가면서 드랍으로 자원줄 끊는 선택도 좋았고, 오버로드로 드랍 훼이크를 쓰고 입구를 개방해서 테란 본진 열고 마무리 하는 센스도 좋았고.

 

 라그나로크에서, S급 테란을, 이렇게 좋은 경기력으로 잡아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홍진호가 당시 대테란전 최강자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거다. 경기 패배후의 김정민 표정이 ㅎㄷㄷ한데 저 표정이야 말로 이 경기가 어떤 경기였는지 가장 확실히 보여준다고 생각.

 진짜, 이 희대의 씹테란맵 라그나로크, 개테란맵 홀 오브 발할라, 테란맵 정글스토리를 4번이나 맵으로 깐(홀 오브 발할라 2번) 코카콜라배 결승전에서 우승자와 호각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3:2 준우승한 홍진호는 정말정말정말 대단한거다. 솔직히 우승으로 쳐줘야 한다ㅠ_ㅠ... 뭐 이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경기일 : 01. 08. 24.

경기대회 : 2001 코카콜라 스타리그 - 04강 1경기 1세트

경기상대 : 조정현 - 테란

     대저그전 전적 [통산전적 86승 78패(승률52.4%), 2001년 전적 23승 21패(승률52.3%),

   코카콜라배 전적 10승 4패(승률71.4%, 예선전적 포함)]

     홍진호:조정현 [통산전적 12:5(홍진호 승률70.6%), 공식전 전적 7:4(홍진호 승률 63.6%)]

경기맵 : Neo Hall of Valhalla

별점 : ★★★


 홀 오브 발할라에 대한 얘기는 위에서 대충 언급한데다가 다음 2부에서 제대로 할테니 일단 넘어가고, 상대 선수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해 보겠다. 조정현은 선수 생활 초기부터 저막끼가 있다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으나(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막.....), 사실 생각보다 저그전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2001년은 조정현이 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두번째로 대저그전 전적이 좋았던 해였으며, 더더군다나 코카콜라배에서는 대저그전 페이스를 상당히 끌어올려 75%의 승률(예선전적 제외)을 기록했다. 홍진호에게 2패 한 것을 제외하고 모든 저그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했는데, 경기 내용도 괜찮은 편이었다. 특유의 아스트랄함 때문에 강력한 포스 같은게 없어서 그렇지, 2001년의 조정현은 저그를 상대로도 꽤나 괜찮은 맞수였다.

 

 이전까지는 홀오발에서 럴커를 주력으로 사용했던 홍진호였으나, 이번에는 스파이어부터 올리면서 1차 훼이크를 줬다. 그러나 메인으로 뮤탈을 사용하지 않고, 스컬지만 보여주면서 테란이 럴커보다 뮤탈에 상대적으로 신경쓰게 만든 뒤(물론 겸사겸사 드랍쉽도 잡고) 뮤탈이 아닌 히드라와 럴커를 또다시 주력으로 사용한다. 홍진호는 선 조이기 후 확장, 조정현은 선수비 후 한방을 생각하고 경기를 운영했는데, 조정현이 홍진호의 멀티를 견제하러 오자 홍진호는 상대적으로 수비가 약해진 본진에 드랍을 하면서 테란 본진을 털고 자신의 멀티를 견제하러 온 병력도 동시에 일부 청소해 멀티를 지키면서 경기가 사실상 기울게 된다. 이후 조정현은 본진 자원만으로 경기를 운영하지만 가난한 본진 플레이로는 가난본좌 홍진호를 이길 수가 없지! 홍진호가 조정현의 본진을 다시 털어대자 조정현도 홍진호의 본진을 노리며 맞불을 놓지만... 홍진호는 기본적으로 "엘리전?ㅋ 콜!ㅋ 자신있음 본진 바꾸던가ㅋ"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원하게 테란 본진을 마저 턴다.(어짜피 홍진호는 멀티도 여럿 있었고... 본진 플레이 하던 조정현이 이길 수가 없다;;) 스파이어 올린 후 내내 스컬지 뽑아서 드랍쉽만 노리던 홍진호는 마지막 정리용 가디언(이 당시는 가필패가 아닌 가필승 시절..ㅠ_ㅠ)을 사용할 때가 되어서야 뮤탈을 뽑고, 가디언으로 테란 본진을 마무리 청소 하면서 GG를 받아냈다.

 사실, 홍진호가 너무 쉽게 꿀떡 이긴 것 같지만, 경기 중반에 나오듯 멀티 언덕 위에서 시즈하면 테란이 저그 멀티를 공짜로 청소하는 더러운 테란맵에서 이렇게 쉽게 이긴 것 자체가 대단한거다.

 

 참... 물론 2001년 경기들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경기 수준이 OME급이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낭만이 있고 스타일리스트들의 로망이 있고 무엇보다 스포츠맨십이 있어 다시 봐도 좋다. 건물 모두가 불타고 자원이 다 떨어지고 뮤탈에 멀티가 막혀 커맨드 센터가 길 잃고 떠다녀도, 히드라를 SCV로 막으면서도 끝까지 버티며 포기하지 않는 그 근성,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는 그 선수로서의 투지와 열정이 보여서, 지금 보면 아마추어 수준 같을지라도 나는 당시의 경기를 좋아한다. 아마 나는, 조정현이 마지막에 분전하는 그 모습에 끌려 이 경기를 꼽았는지도 모른다.

 

 

 

 

 

 역시 추억팔이는 재밌다. 지금 보면 촌스러운 무대와 의상과 외모에, 허접한 경기력이지만 초창기의 스타판은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낭만이 있다. 그 낭만이 나로 하여금 이 시절을 자꾸만 추억하게 하는 건 아닐런지.

 

 어쨌든, 1부 1장 끝. 1부 2장에서 계속.

 

 

 

 

 

Log

 + 14.09.01. 상대전적 추가

 + 14.09.01. 대저그전 전적 추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