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우 - 이미 넌 고마운 사람
 
 
 
 
 
홍진호
HongJinhO
[NC]...YellOw
 
 
1982. 10. 31.
 
 
前 프로게이머
前 프로게임단 감독/프런트
現 방송인
 
 
 
 
 
서른 세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주의 : 14년 치 팬심 꽉꽉 담은 글
 
 
 
 
 
프로게이머 홍진호
 
 
방송 데뷔 : 2000. 12. 10. iTV 게임월드 <고수를 이겨라> (VS강도경)
공식 데뷔 : 2000. 12. 12. 쉐르파배 오픈대회 (VS나건동)
공식 은퇴 : 2011. 06. 25.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VS전상욱)
 
 
통산전적 923전 527승 396패 (57.1%)
대테란전 427전 253승 192패 (59.2%)
대토스전 275전 165승 110패 (60%)
대저그전 221전 127승 94패 (57.5%)
 
 
선수생활을 하면서, 역대 세 번째로 많은 경기를 치른 선수
전성기가 끝난 이후부터는 주구장창 지면서 승률을 까먹고도 통산 승률이 50%대 후반이었던 선수
역상성 종족인 테란을 상대로 게이머 생활 막판까지 60%에 가까운 승률을 보유한 선수
만년 2인자라 놀림받았지만, 사실은 스타크래프트1 역사 첫 머리에 기록된
저그의 제왕
 
 
 
 
 
'저그'라고 쓰고 '홍진호'라고 읽는다
 
 
다른 저그 프로게이머들이 테란에 무너질 때에도 끝까지 저그의 자존심을 지켰던
Lord of Zerg
 
 
연간 역상성 종족(테란)전 최고 승률 보유 저그 : 2002년 71.6%, 비공식전 포함
이 기록은 스타크래프트1 리그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전성기 : 2001-2004
 
2001
통산전적 123전 78승 45패 (63.4%)
대테란전 54전 34승 20패 (63.0%)
대토스전 33전 20승 13패 (60.6%)
대저그전 36전 24승 12패 (66.7%)
 
2002
통산전적 210전 143승 67패 (68.1%)
대테란전 95전 68승 27패 (71.6%)
대토스전 64전 41승 23패 (64.1%)
대저그전 51전 34승 17패 (66.7%)
 
2003
통산전적 164전 99승 65패 (60.4%)
대테란전 85전 46승 39패 (54.1%)
대토스전 33전 22승 11패 (66.7%)
대저그전 46전 31승 15패 (67.4%)
 
2004
통산전적 95전 58승 37패 (61.1%)
대테란전 42전 25승 17패 (59.5%)
대토스전 30전 22승 8패 (73.3%)
대저그전 23전 11승 12패 (47.8%)
 
 
이후, 흔히 놀림감으로 많이 거론되는 '삼연벙 사건'이 터지면서 홍진호는 기나긴 슬럼프를 겪었고,
홍진호의 전성기는 2004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전성기를 끝내버린 임요환을, 홍진호는 원망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난 뒤, 며칠 안 되어 임요환과 히히덕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다만, 홍진호는 4강이라는 멋진 무대에서 허무하게 진 것보다는,
오랜만의 임진록을 기다렸을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홍진호는 그런 선수였다.
 
 
 
 
 
폭풍이라고 불렸던 선수
 
 
가난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가장 효율적인 전투와 운영을 했던 선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하며, 경기 내내 공격을 쉬지 않았던 선수
폭풍처럼 몰아치며 상대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공격적인 선수
 
 
전략적이고 가난한 홍진호의 스타일을 보며 사람들은 저그답지 않은 저그라고 했지만,
사실은 저그의 본질을 가장 먼저 파악했던, 그래서 가장 저그다웠던 선수
 
 
언제나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휘몰아칠 땐 그 누구보다 두려웠던 선수
아슬아슬하고 처절한 경기마저도 그것이 매력적이었던 선수
 
 
홍진호라서 가능했던 폭풍 스타일,
그것은 스타크래프트1 역사에 꼽히는 매력적인 경기방식이었고
그래서 홍진호는 가장 사랑받는 '스타일리스트'였다.
 
2003 Olympus 스타리그 16강 : 홍진호 VS 김현진
 
2003 LG IBM PC TEAM LEAGUE : 홍진호 VS 박태민
 
2003 MyCube 스타리그 16강 : 홍진호 VS 강민
 
누가 봐도, 설사 게임을 모르는 이가 보아도
이 경기들을 보면 홍진호가 왜 '폭풍'이라고 불렸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독하지 못했던 천재의 끈질긴 도전
 
 
홍진호 자신은 부정하지만, 홍진호는 스타크래프트1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성을 가진 선수였다.
저그 플레이어로서 그가 가진 순간 최적화 능력은
계산이나 연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감각에 의한 재능이었다.
홍진호는 피지컬이나 연습이 아니라, 천부적인 감각으로 경기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홍진호는 독하지 못한 천재였다.
자신의 라이벌처럼 지독하게 연습에 매달리지도 않았으며,
그 라이벌처럼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는 마인드도 없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예민하고 날카로웠으나 홍진호는 무디고 둥근 편에 속했다.
말하자면, 한량 같은 선수였다.
 
 
홍진호는 영리하지 못했다.
지면 탈락, 이겨야 4강에 진출하는 상황을 앞두고 홍진호는 프로토스를 상대로 8강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맵은 저그:프로토스의 전적이 1:9(최종 전적 기준)인 극악의 프로토스 맵.
당대 3대 저그였던 저그 선수도 종족을 테란으로 바꾸어 플레이할 만큼 저그에게 무덤과도 같은 맵이었다.
홍진호는 당시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타 종족 플레이를 잘하기로 손꼽히는 실력자였기에
영리하게 다른 종족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었지만,
“저의 보잘것없는 저그를 팬들께서 사랑해 주시기에 저그로 승리해 보이고 싶습니다.”라며 저그를 택했다.
당연히 경기는 저그인 홍진호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으나,
홍진호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이라도 지겠다는 듯 악착같이 경기에 임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사정이 좋지 않아 계속해서 경기가 끊겼고, 재경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치자
홍진호는 네트워크가 연결된 찰나의 순간에 재빠르게 항복 선언을 했다.
네트워크 사정에 의한 재경기는 선수의 과실이 아니었고, 4강 진출이 간절했던 홍진호가 조금만 더 영리했다면
네트워크가 완전히 끊기기를 기다렸다가 재경기를 노려볼 수도 있었겠지만,
홍진호는 되려 자신이 항복 선언을 하지 못해서 재경기가 될까봐 걱정된다는 듯 행동했다.
홍진호는 그런 선수였다.
아무리 불리한 경기도 악착같이 버티며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한 방'을 쏟아 붓고 항복했지만,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승리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는, 승부 앞에서 누구보다 순수한 선수였다.
아쉬운 8강을 마치고, 상대 선수이자 아끼는 동생에게 웃으며 "꼭 우승해라." 하고 등을 두드려 줄 줄 아는 선수였다.
 
 
홍진호는 모질지도 못했다.
결승전 징크스, 비운의 준우승자 이미지가 생겨날 무렵 모처럼 오른 결승전에서
홍진호는 1경기 승기를 다 잡은 채 상대의 항복 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때 상대 선수는 항복 선언이 아니라, 경기 중단을 요청했다. 사운드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다.
홍진호의 승리가 유력한 상황에서의 석연찮은 경기 중단 요청이었다.
홍진호는 재경기를 거부하고 경기 강행을 요구할 수도 있었으나, 상대의 경기 중단 요청을 받아들이고 재경기를 했다.
결승전에서는 1경기와 5경기에 같은 맵을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홍진호는 방금 사용한 전략 대신, 5경기에 사용하고자 준비했던 전략을 미리 앞당겨 사용해 1경기에 승리했으나,
박빙의 승부로 4경기 안에 결승전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5경기에서 앞서 사용한 전략을 다시 사용했다가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분명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홍진호는 웃으며 동생의 우승을 축하해주는 선수였다.
불이 꺼진 무대 뒤에서 홀로 주저앉아 울지라도.
 
 
멍청하다 느껴질 정도로 영리하지 못했고, 모질지 못했으며 독하지 못한 홍진호였지만,
홍진호는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도전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우승을 눈앞에 두고 실패하면서
수년간 쌓인 절망과 좌절의 벽을 넘어
홍진호는 끈질기게 우승을 향해 내달리는 선수였다.
모두가 "홍진호는 끝났다"고 말하고, "홍진호는 안된다"고 비웃고 비난할 때에도, 그 비난을 견뎌가면서.
 
 
 
 
 
노장은 죽지 않는다
 
 
홍진호의 전성기는 사실상 2004년에 끝났다.
2006년,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개인리그 우승에 도전했지만 3위에 그쳤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홍진호는 2005년, 2006년에 이미 스타판의 '노장'이었으며 '끝물' 소리를 들었고
2007년 이후 홍진호는 '먹튀', '퇴물'로 불렸다.
개인리그는 물론이고 프로리그(팀 단위 리그)에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으며
마지막 '발버둥'이었을 2008 개인리그 32강에서 탈락한 이후 군에 입대했다.
 
 
홍진호는 공군 프로게임단인 공군 에이스로 입대했다.
홍진호는 '프로게이머로서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상 선수생활 마무리를 위한 행보쯤으로 여겼다.
팬들도 홍진호를 응원하긴 했지만, 홍진호의 회생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현역 선수로서의 홍진호, 프로게이머로서의 홍진호는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0809 신한은행 프로리그 : 홍진호 VS 김택용
735일 동안 공식전에서 승리해보지 못한 퇴물 선수와
대저그전 최강 프로토스, 대저그전 7연승 중인 케스파 공인 랭킹 2위의 선수의 경기.
누구도 홍진호가 이길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팬인 나조차도 그랬다.
그랬는데............
거짓말처럼 홍진호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도 한창 전성기 시절의 폭풍 스타일로.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홍진호는 경기로 보여줬다.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 홍진호 VS 이제동
전성기가 6년 전에 끝난, 한때 최강이었던 저그와
동족전 제일 잘하는 저그, 당대 최강의 저그이자 역대 최강 저그의 경기.
'저그의 시작'과 '저그의 끝'이 맞붙은 이 경기에서,
제 손으로 저그의 역사를 열고 그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던 이가 승리했다.
저그라는 종족을 더 잘 알고, 더 잘 다뤘던 홍진호의 승리였다.
왜 저그의 진정한 왕이 홍진호인지를, 홍진호는 경기로 증명했다.
 
0910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 홍진호 VS 신상문
프로리그(팀 단위 리그) 꼴찌 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랭킹 75위의 노장 선수와
한 팀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에이스이자 대저그전 7승 무패, 랭킹 14위 젊은 선수의 경기.
피지컬이 좋지 못한 홍진호가 11년이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경기양상을 흡수해 자신의 경기 스타일과 접목했기 때문이었다.
전성기가 끝난 지 6년이나 지난 선수의 경기임에도 왜 홍진호의 경기는 여전히 재미있는지,
홍진호가 왜 대테란전 스페셜리스트였는지를 알 수 있는 경기.
 
 
홍진호가 선수생활 후반에 보여준 기적과도 같은 승리는,
전성기는 끝났을지언정 선수로서의 삶은 아직 끝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저그의 진정한 왕
 
 
홍진호의 은퇴식에서, 홍진호의 팬을 포함한 많은 e스포츠팬들이 홍진호에게 했던 말
“저그의 진정한 왕, 부디 영원하소서.”
 
 
역대 케스파랭킹 2위 횟수 3위 : 12회[2002.09-2003.02(6회), 2003.10-2004.03(6회)]
역대 케스파랭킹 3위 이내 횟수 공동 5위 : 24회, (공동 5위 김택용)
역대 케스파랭킹 5위 이내 횟수 5위 : 32회
역대 케스파랭킹 10위 이내 횟수 공동 6위 : 44회, (공동 6위 임요환)
+ 케스파랭킹 : 한국 e스포츠 협회 공인 랭킹
역대 케스파랭킹 저그랭킹 1위 횟수 2위 : 27회[2002.05-2004.07(27회)]
역대 케스파랭킹 저그랭킹 2위 횟수 8위 : 7회[2002.03-2002.04(2회), 2004.09-2005.01(5회)]
역대 케스파랭킹 저그랭킹 3위 이내 횟수 2위 : 46회
 
 
홍진호는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시작될 즈음부터 그 리그가 막을 내릴 즈음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그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데뷔하고 은퇴했으며 이름을 날렸지만
역사에서 홍진호 위에 랭크된 선수들이라고는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송병구, 이윤열, 임요환 정도다.
그나마도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송병구는 1~2세대 뒤의 선수들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의 유산을 받아 진일보함으로써 세대교체에 성공한 선수들이니
앞세대 선수들보다 실력상 우위에 있음이 당연하고, 따라서 단순 비교가 어렵다.
홍진호와 동시대에 경쟁했던 선수들 중 홍진호 위에 랭크된 선수는 이윤열, 임요환이 전부다.
당시에 홍진호가 이들을 상대로 얼마나 불리한 맵에서 싸웠는지, 얼마나 불리한 종족으로 싸웠는지를 안다면
홍진호가 이들보다 뒤처지는 선수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저그 플레이어 중 홍진호보다 상위에 랭크된 선수는 이제동뿐이다.
홍진호 이후 그리고 이제동 이전 사이에 수많은 저그들이 이름을 날렸지만
누구도 홍진호 위에 랭크되지 못했다.
홍진호가 최강의 저그는 아닐지 몰라도, 최고의 저그였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역대 두 번째로 억대연봉 장기계약 체결
역대 두 번째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100승 클럽 가입
역대 두 번째로 온게임넷 스타리그 명예의 전당 등록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다승순위 2위
역대 프로게이머 통산 다승순위 5위
 
 
누군가는 또 2를 찾아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팬들의 기억이 흐려지고 구전되는 말들이 왜곡되어도
홍진호는 기록이 증명하는 뛰어난 선수였다.
비록 최고가 아닐지라도, 최강이 아닐지라도
홍진호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이들 중에서 홍진호가 ‘저그의 진정한 왕’임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저그가 힘들던 시절에 저그를 일으키고, 지탱하던 선수
저그의 자존심이었던 선수
마지막까지 ‘저그의 왕’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않았던 선수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 홍진호 VS 임요환
 
 
가장 ‘홍진호다웠던’ 선수
가장 ‘저그다웠던’ 선수
그리고, e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았던 선수.
 
 
 
 
 
‘프로게이머 홍진호’의 주요 수상내역
 
 
2000 게임아이배 주장원전 우승
2000 아이티비 한게임배 서바이벌리그 우승
2001 PSB메가패스배 사이버그랑프리 리그 우승
0001 쉐르파배 오픈대회 준우승
2001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8강
2001 코카콜라배 스타리그 준우승
2001 스카이배 스타리그 4강
2001 한빛소프트배 KPGA 위너스 챔피언십 준우승
2001 아이티비 신인왕전 우승
2001 KT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왕중왕전 우승
2002 KPGA TOUR 1차리그 준우승
2002 Reebok KPGA TOUR 2차리그 준우승
2002 네이트배 스타리그 16강
2002 SKY배 스타리그 3위
2002 펩시 트위스트 KPGA TOUR 3차리그 6강
2002 파나소닉배 스타리그 3위
2002 WCG 국가대표 선발전 우승, 스타크래프트 개인전 준우승
2003 스타우트배 MSL 16강
2003 올림푸스배 스타리그 준우승
2003 TG삼보배 MSL 준우승
2003 마이큐브배 스타리그 8강
2003 벼룩시장 FindAll배 GhemTV 챌린저 오픈 우승
2003 KTEC배 KPGA 투어 위너스챔피언쉽 결승 우승
2004 하나포스 센게임배 MSL 16강
2004 스프리스배 MSL 16강
2004 에버배 스타리그 4강
2004 KT-KTF 프리미어리그 4강
0405 아이옵스배 스타리그 8강
2005 에버배 스타리그 16강
2005 우주닷컴 MSL 16강
2005 So1 스타리그 16강
2005 스니커즈배 올스타 리그 우승
2005 블리즈컨 스타크래프트 부문 우승
2006 WWI 준우승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1 3위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24강
2008 곰TV 클래식 시즌1 32강
2009 IeSF 챌린지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준우승
2009 e스타즈 서울 2009 스타크래프트 헤리티지 4강
 
 
홍진호는 e스포츠가 제대로 정립되기 이전에 전성기를 맞은 선수다.
e스포츠판의 개국공신이자 선구자였지만, 그렇기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지금 남아있는 e스포츠 초창기의 기록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홍진호의 초창기 기록 역시 많은 부분 누락되었다.
그나마도,
훗날 e스포츠가 보다 프로화된 이후, 스타판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홍진호의 기록과 성과의 많은 부분이 축소되었다.
1세대라서 희생해야 했고 손해를 봐야 했던 기록들,
그것을 홍진호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e스포츠의 ‘레전드’로서
 
 
2011 스타크래프트2 개인리그 도전(홍진호의 Project A)
2012 대한민국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2012 LOL 프로게임단 제닉스스톰 감독
2013 LOL 프로게임단 제닉스스톰 프론트
2013 소닉 스타리그 레전드매치 출전 (VS박정석, 승리)
2014 몬스터짐 스타 파이널포 개최, 우승
2014 제1회 콩두 스타즈 파티 개최, 우승
2014 위메프 곰 클래식 시즌4 8강
2014 하스스톤 인비테이셔널 참가
2014 프로게이머 매니지먼트사 콩두컴퍼니 설립
 
 
은퇴 이후에도 홍진호는 e스포츠를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20대 전부를 바친 곳, 자신의 20대 그 자체였던 곳에 계속해서 애정을 쏟았다.
팬들이 원하는 스타2에 도전하기도 했고, 지도자로 e스포츠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게임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이벤트리그를 개최하기도 했다.
스타1을 아직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e스포츠와 스타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부탁하면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자 후배들과 이벤트 전에서 함께 경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고 미래가 불안정한 프로게이머 후배들을 위해 프로게이머 매니지먼트사도 차렸다.
홍진호는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e스포츠계의 레전드로서, 프로게이머 선배로서 e스포츠를 이끌고 있다.
"연예인 다 됐네" 하고 팬들이 농담할 만큼, 소위 '뜬' 지금까지도.
 
 
자신의 뿌리이자 고향을 잊지 않는 사람.
자신이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되돌려주려는 사람.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듯, 스타판의 선구자로서 존경받는 선수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선수생활을 하며 e스포츠판에서 그토록 상처를 받았음에도
홍진호는 여전히 e스포츠를 위해 무언가 하려고 한다.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의 새로운 도전 : 방송인 홍진호
 
 
2013 tvN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우승
2013 tvN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
2013 온게임넷 《더지니어스 비하인드》
2014 SBS 파워FM 《영스트리트 - 스무고개》
2014 tvN 《공유TV 좋아요》
2014 tvN 《김지윤의 달콤한 19》
2014 tvN 《SNL 코리아 시즌 5》
2014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
2014 JTBC 《크라임씬》
2014 tvN 《오늘부터 출근
 2014 CF 〈트윅스〉
2014 CF 〈KT〉
 
 
여전히 머리 쓰는 것을 즐거워하고, 여전히 승부를 좋아하고,
여전히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홍진호는 은퇴 이후 지니어스를 통해 방송에도 발을 들였다.
선수 시절부터 팬이었던 누군가의 눈에는 여전히 프로게이머 같은 그 모습이
홍진호를 방송으로 접하고 방송인으로 인식하는 어떤 이들에겐 새삼스럽고 매력 있나 보다.
홍진호는 지니어스1에서의 활약과 우승에 힘입어 제법 성공적으로 방송계에 안착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여전히 승부사다워서, 여전히 폭풍 같아서 기뻤었다.
 
 
소위 머리 쓰는 예능을 제외하고는 방송을 잘 못 할 것 같아 걱정했는데,
기우였는지 다른 방송에도 제법 잘 적응하고 어느샌가 CF도 따내면서 꽤 잘 나가고 있다.
십 년 가까이 몸담았던 팀의 모기업 CF에 출연한 것을 보고,
홍진호는 이제 프로게이머가 아닌 방송인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홍진호는 이제 방송인으로 점차 자리를 잘 잡아나가고 있는듯하다.
20대에 해보지 못한 도전을 이제 하는 것뿐이라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겠다는 홍진호.
길을 정하면 뒤를 보지 않고 앞을 향해 내달렸던 프로게이머 시절과 다름없이, 여전히 폭풍 같은 그를
응원한다, 여전히.
 
 
 
 
 
 
청춘을 그와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었다.
부디 행복하기를.
스타판에서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였던 그를 보며 늘 바랐었던 그의 평온과 행복이
부디 영원하기를, 그의 생일을 맞아 다시금 기원합니다.
 
 
 
 
 
 
폭풍 홍진호를 응원했고, 아꼈고,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오래된 팬이
 
홍진호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께서 함께 축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일 축하한다, 진호야.
너의 경기를 볼 수 있음에 감사했었다.
너의 팬으로서 가슴아프고 힘든 시간속에서도
너를 응원하고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을 후회 한 적이 없다.
내겐 영원히 고마운 사람,
부디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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